무엇보다 먼저 자기-이해(self-knowledge)가 없는 명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티벳트 성자를 찾아서의 후속편 그리스도의 요가 中에서...
관념이란
자신을 제한하고 있는 조건들에 의해
구속 되어 있는 자아가 투사(projection)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의 깊게 들을 때,
그저 말(word)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말이 담고 있는 내적 의미까지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그대는 사물의 진실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마음이 자신이 지어낸 것들로 부터 자유로워질때
진리는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날마다 일어나는 다툼, 두려움,사업에 대한 걱정, 식구들끼리의 싸움,
사회적 증오와 좌절 등에 그대가 묶여 있을 때,
이 모든 것들은 그대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다.
그래서 그대는 위안의 수단으로서 소위 진리라 부르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식의 회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 할수록 마음은 둔감해지고, 혼란스러운 상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음이 자극이나 소위 영감이라 부르는 것들을 통해서,
그리고 기도를 하거나 주문(mantrims)을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서
회피하고자 하는 한, 마음은 스스로의 사고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는 것은 자유에 이르는데 매우 중요하다.
자기-이해(self-knowledge)만이 유일한 길이다
회피의 성격을 띠고 있는 모든 방법들은
그리스도 요가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근본 원리로 부터 그대를 멀리 떼어놓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깊게 듣는 데 있어서, 관념을 쌓거나 결론이나 가설이나 추측을 내리는 행위들은
그대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진리의 창조성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와 그것이 지어내는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 것만이, 자기-이해야말로
진리에 이르는 문이자 그리스도 요가에 이르는 입구라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다.
1장
<그리스도의 요가>는 내가 마지막으로 집필한 책,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Beyond the Himalayas>의 후속 편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내 친구와 함께 머물렀던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들과,
잠사르(Zamsar)까지 가는 여정과,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고자
소위 문명 세계라 부르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링-쉬-라 은수자(the Hermit of Ling-Shi-La)와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요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잠사르에 있는 내 친구의
고요한 안식처(sanctuary)에 들리는 것이 낫겠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떠나 안식처로 향했다. 그리로 이동하는 동안에
우리는 같이 길을 걸으며 서로의 우정을 돈독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길에 내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진리는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었다.
창포 강을 건넌 뒤에 우리는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강 근처에 있는 동굴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 우리는 마른 장작을 찾아내었고 불을 피워 가져온 음식을 요리해서 먹었다.
우리는 밤새 불길이 줄어들지 않도록 땔감을 집어넣었고, 은수자님과 그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러다 나는 잠들었고, 태양이 뜨고 나서야 눈을 떴다. 추운 날씨였지만 나는 기력을 회복해 있었고,
씻기 위해 강가로 내려갔다. 씻고 돌아오니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고, 내 친구와 함께 아침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라사(Lhasa)에 닿는 무역로(trade root)를 향해 출발했고 디킬링이라 부르는 곳까지 되돌아갔다.
여기서부터 랑 추(Rang Chu)라 부르는 강 왼쪽으로 이어져 있는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얌드록 초(Yamdrok Tso)라 부르는 거대한 호숫가를 따라 걸었고
그 길은 무역로로 이어져 있었다. 얌드록 초 호수는 때로는 호수의 색깔 때문에
호수 팔티(Lake Palti)나 투르쿼즈 호수(Turquoise Lake)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까지 이르는데 사흘이 걸렸고,길은 매우 험해서 발 두개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무역로에 도착했고,
무역로라는 말의 뜻이 그러하듯 이 길은 상대적으로 편한 길이었다.
페데 드종(Pede Dzong)이라 부르는 작은촌락에 도착하자 내 친구는 그가 잘 알고 지내는
이장(headman)의집에 들렸고, 그는 우리에게 조랑말(pony) 두 마리를 내어주었다.
잠사르까지 오가는 길 내내 믿음직스런 티베트 조랑말을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기뻤다.
내 조랑말은 씨말(stallion)이었으며, 흰 점이라고는 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까만 색으로서
매우 듬직하였다. 나는 그말에게 검은 왕자(Black Prince)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말은 처음에는 조금 긴장한 듯 보였으나, 서로를 알아감에 따라 말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나에게 항상 있던 재능들 중 한 가지는 말을 썩 잘 탄다는 것인데,
이는 어릴 때부터 말들을 가까이 다루며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 검은 왕자라고 이름을 붙였던
매우 사나웠던 검은색 말이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누구도 그 말 근처에는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고삐 없이 풀려져 있던 칸으로 들어가서 아마인 케이크를 먹일 수 있었는데,
그 말은 참 맛있게 씹어 먹었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는 내가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을 보시고는
심히 염려하셨고, 나에게 다시는 그런 짓을 다시는 하지 말라며 엄하게 이르셨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정말로 사랑했고, 그 말 역시 단 한 번도 나를 물거나 발로 차려고 한 적도 없었다.
내가 말을 잘 다룬 것만 보자면, 내가 마부들이 쓰는 용어(horseman`s word)를 알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용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고, 그 당시에 그것은 비밀로 다루어졌다.
나에게는 마부들의 용어 따위의 것들은 없고 다만 동물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반응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내 티베트 조랑말을 보고 있노라면 검은 왕자가 떠올랐고, 그래서 그 것이 내 조랑말의 이름이 된 것이다.
내 친구와 나는 길을 걷는 동안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우리가 잠사르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가 정녕 하려는 일은 착수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몇 마일이곤 누비고 다녔다.
내 생각은 종종 링-쉬-라 은수자의 안식처와 거기서 나에게 드러난 모든 것들에 머물곤 하였다.
나에게 있어 그 은수자와의 만남은 꿈이나 상상이 아닌 실재의 기억이었으며,
그분께서 말씀하셨던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내마음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내 생각들과 내 친구의 생각들이 동시에 거의 일치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으며,
우리는 그 생각들에 대해 수없이 이야기하곤 하였다.
세 번째 날 우리는 투르쿼즈 호수에 도착하였다.나는“여기가 얌드록 초 호수이군요."라 말했다.
그곳은 내가 태어났던 스콧틀랜드 고지(the Highlands)에 있는 호수(loch)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호숫가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섬이 있고 저 너머에 산들이 눈으로 덮여 있는 모습까지도 비슷했다.
호수의 물은 녹색을 띠면서도 푸르렀다. 그래서 사람들은 투르쿼즈 호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호수 표면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매우 잔잔했다. 나는 말에서 내려 물 가장자리로 내려갔는데,
수 백마리나 되는 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낚시를 잘하는 나는
물고기 중 몇 마리에 시선을 고정하였으며, 낚싯대와 낚싯줄이 이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낚싯꾼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군요!”나는 내 친구에게 말했다.“그렇지.”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자네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보았지만,아쉽게도 여기서 낚시할 시간은 없다네.”
우리가 있었던 곳은 해발 14000 피트(426m)에 이르는 곳으로서,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는 물은 담수(fresh)였다. 호숫가는 야생꽃들로 덮여 있었으며 수많은 색깔들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나는“참으로 안식처라 할 만하군요”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호수에는 수 백 마리나 되는 오리와 거위들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돌멩이를 하나 집어서 그 근처로 돌을 던졌고
오리와 거위들은 꽥꽥 소리 지르며 반 마일 정도 떨어진 섬으로 날아갔다.
나는 참으로 기뻤다. 그곳의 풍경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으며, 우리 주위로는 아름다운 생명들로 가득했으며,
여정 중 가장 고된 일정이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호수 주변을 따라 말을 타고 앞으로 나갔으며,
도중에 짐을 실은 야크와 당나귀 떼의 행렬을 진행 방향과 진행 반향 반대편 모두에서 수 차례 만나곤 했다.
어느 한 행렬에서는 나는 500 마리 넘게 야크를 셀 수 있었으며, 다른 행렬에서는 150 마리의 당나귀를 세었다.
페데 드종 마을은 호수 안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었으며, 가장 튀어나온 곳 오른쪽에는 오래된 성채(fort)가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성채를 바라보니, 스콧틀랜드 인버네스 주에 있는 네스 호수 근처에 불쑥 튀어 나와 있는
글렌 우르쿠하르트(Glen Urquhart) 성이 연상되었다. 이제는 폐허로 변해버린 그 성채의 주위로는
야생꽃들이 옹기종기 피어 있었다. 파랑색의 참제비고깔과 보라색의 참제비고깔이 젠시안(gentian) 등과 같은
야생꽃들과 함께 엄청나게 많이 피어 있었다.
우리는 가는 길에 두 번 쉬었는데, 한 번은 요리를 하기 위해서 쉬었고
다른 한 번은 침낭에서 잠을 자느라 쉬었다. 모기들만이 나를 괴롭혔다.
우리는 냡소 라(Nyapso La)를 가로지른 후 창 포(Tsang Po) 강을 다시 만날 때까지 호수 주변을 여행하였다.
해발 16000 피트(5181m)가 되는 이 길에서 우리는 창포 강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골짜기가 창포 강이 흐르는 주변에 늘어서 있는 밭떼기들로 푸른색과 붉은색과 갈색 등으로
온통 뒤덮여 있는 모습을내 눈이 닿는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강 양쪽을 따라 늘어서 있는 높은 지역마다 빨강색 지붕을 이고 있는 집들이 흩어져 있었으며
그 너머에는 웅장한 산맥들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잠시 응시하고 있었는데,
잠시 뒤 친구가 “자네 어디 있나?”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미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가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는데,그때 내 목소리가 계곡에 메아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참 야릇한 경험이었고, 지금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 때의 소리가 생생하다.
우리는 거의 5000 피트(1524m) 가량 되는 꼬불꼬불한 길을 계속해서 내려갔으며,
이윽고 매우 비옥한 계곡에 도착하였다. 2 피트(60cm)를 넘는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나는 그토록 아름답게 늘어서 있는 색깔들을 본 적이 없다. 파랑색 참제비고깔, 보라색 참제비고깔,
프리뮬러, 젠시안, 야생 장군풀, 중국 양귀비 등 다른 야생화들도 늘어서 있었다.
길이 창 포 강과 만나는 곳에 이르자,강은 그 폭이 1/4 마일(400m)도 넘는 듯 했으며
매우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엄청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는 그 강에 나무 한 조각을 던져 넣었는데,
나무조각은 이내 시속 30 마일(48km/h)의 속도로 떠내려갔다.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에 쌓여 있던 눈들이
녹아내리기도 있었고, 최근 며칠 동안 심하게 내렸던 폭우로 인해서 창 포 강은 홍수로 범람하고 있었다.
우리는 창다 드종(Changda Dzong)이라는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내 친구는 무역로 주변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창다 지역에서는 도르 창(Dor chang)이라는 이름의
이장의 집에서 환대를 받았다. 거기서 우리는 잘 먹고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강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따라 착삼(Chaksam)이라는 곳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우리는 통나무를 엮어 만든 나룻배를 타고 어떤 사고도 없이 안전하게 강을 건넜다.
이 시기에 강은 매우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우리는 반대편으로 안전하게 건넜다.
출발한 지점보다 반 마일(800 미터) 정도 아래쪽 되는 지점에 도착해 있었다.
이지점에서부터 강은 수 마일에 이르기까지 넓어졌으며 한없이 펼쳐져있는 모래 황무지 사이로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강 반대 편에 있는 이 길은 꼬불꼬불하기도 하고 오르내림도 심하였다. 키 추(Kyi Chu) 강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때로는 강보다 높은 곳을 지나기도 했고 이내 다시 강가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곳을 지나기도 하였다. 키 추 강은 창 포 강 만큼이나 넓은 강이었다. (키 추라는 말은 행복의 강이라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이 거대한 두개의 강이 만난다.
키 추 강은 라사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강이고, 여기서 창 포 강은 키 추 강과 합류하여 흐른다. 눈이 녹아 생긴 이
거대한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강물은 엄청나게 요동을 쳤으며, 수 백 피트나 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불어난 강물로 그 기세를 힘입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넘실거렸다. 어떤 생명체도 강물의 이 엄청난 급류 속에서는
단 일분도 살아있을 수 없을 듯 보였다. 심지어는 배조차도, 한때는 얼음과 눈이었던 이 엄청난 소용돌이 물 속에서는 금방 물에 잠겨 아래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 강줄기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광경은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내 친구는 내 말에 동의하였다.“과연 이 광경은 세계의 가장 위대한 절경 중 하나일테지만,
바깥 세계에서 온 사람들 중에서 이 모습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단다.”
두 강은 이제 하나가 되었고, 오른쪽으로 굽이쳐 흘렀다. 이제 이 강은 브라흐마푸트라(Brahmaputra)강이였으며,
키 추 강까지 합류하여 거대한 강이 되었다. 그리고 이 강은 티베트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을 통과하면서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제법 멀리 떨어진 그 곳에서도 그 강 양 옆으로 비옥하게 경작된 밭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
곳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루터들이 있었다. 첫 번째 나루터는 도르예트라(Dorjetra) 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으며, 그 다음은 더 아래 쪽에 치티시오 드종(Chitishio Dzong) 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었으며, 그 이후로 제르바(Gerba)에도 있었고, 티멘(Timen) 지역에도 나루터가 있었다. 40~45마일(64~72km) 이나 되도록 늘어서 있는 이 지역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서구인의 방문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라마승들이 입는 긴 예복을 입고 있었으며, 예복 덕분에 가는 곳마다 많은 혜택을 받았다.
말은 주로 내 친구가 하였고, 나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만 티벳말로 대답은 하되,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나 자신을 자제하였다. 가는 도중에 우리는 몇 몇 라마승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내 친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현인(sage)으로 대접하였다. 이처럼 내 친구는 어디에 가나 두드러졌다.
다음 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인 드레풍 수도원(Drepung Monastery)에 도착했다. 내 친구는 거기에 있는 수도원장들과 잘 알는 사이였고, 그래서 우리는 무척 환대를 받았다. 내 친구는 그들에게 내 일에 대해 이야기했고 내가 왜 티벳에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수도원장들 사이에서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내 친구는 문두(그의 이름은 이렇게 발음되었다)라는 이름의 라마승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그는 인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영국에 가서 광산과 관련된 학문(mining engineering)을 배워 왔다. 그는 유쾌한 친구였다.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으며
우리는 대화를 활기차게 나누었다.
나는 드레풍 수도원의 크기에 참으로 놀랐다. 그곳은 꽤 큰 도시였으며, 자급자족이 가능하였고(self-contained), 9000 명이 넘는 라마승들이 살고 있었다. 본부라 부를 만한 건물 안에는, 한 번에 6000명이 넘는 라마승들이 자고
먹을 수 있는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또한 기도문통들(prayer wheels)도 내가 티벳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컸다.
그것들은 대략 직경 10 피트(3m)가 넘었으며 톱니바퀴로 움직여지고 있었다. 커다란 톱니바퀴를 손잡이로 돌리면
그것은 차례대로 다른 톱니바퀴들을 돌렸으며 이로써 가장 큰 톱니바퀴를 손쉽게 돌릴 수 있는 것이었다.
기도문통이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징이 울려 기도문통이 서 있는 현관에 그 소리가 울려퍼지게 되었다.
이 소리는 그대들의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의식이라든지 의례용품들은, 내가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Beyond the Himalayas>에서 설명했던 다른 수도원들과
거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아늑한 숙소와 음식을 제공받았다. 드레풍에서 우리는 하루 밤낮을 묵었을 뿐인데,
우리 둘은 잠사르에 있는 내 친구의 안식처로 최대한 빨리 가길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행 검문 따위의 일로 티벳의 정부 관리들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라사에 있는 포탈라 사원(the Potala)을 방문한 후 계속 가기로 결정하였다. 수도원장들은 우리의 결정에 놀랐었는데, 그들에게 있어 정부의 관리들은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저 시간 낭비일 따름이었다.
우리가 라사로 이어지는 관문(gateway)에 도착하자 길가를 따라서 앉아있는 거지떼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돈을 받기를 바라며 고맙다는 인사의 상징으로 혀를 내밀고 있었다. 이 거지들은 나름대로 전문가였으며
구걸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일도 하려고 들지 않았다. 내가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에서 말했듯이, 그들은 산적(bandit)들의 감독을 받고 있었다. 그들도 도둑질과 구걸하는 일이이야 말로 신사의 직업이라고 믿고 있었다.
라사의 변두리에서 보니, 포탈라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색 지붕들로 인해 장엄해보였다. 포탈라는 거대한 바위
위에 매우 오래 전에 세워져 우뚝 서 있었고, 아메리카 대륙이 알려지기도 훨씬 전에 건물의 높이는 17층이나 되었다. 아마 온 세계를 통틀어 포탈라는 단독 건물로써 가장 큰 건물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출입허가증을 들고 포탈라로 갔다. 이 당시 티벳은 섭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the Regent was then in charge). 그 당시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 있는 다즐링(Dajeeling)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당시 목숨이 위험하여 망명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 있는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다 보았는데, 그 중에는 신비의 정원(the Garden of Mystics), 달라이 라마의 무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관심을 갖고 본 것은 그들의 종교를 이루고 있는 것들로써,
달라이 라마의 옥좌와 그밖의 다른 것들도 많이 보았다. 나는 종교의 본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종교적 감흥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 줌으로써 그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자선(charity)이라 부르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대단하고 숭고한 사람이 된 듯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고상한 행위인가? 과연 우리 모두는 인간이 소외 되는 이 비극을 내버려두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책임이 없는가?
우리는 늙은 사람들, 눈먼 이들, 불구가 된 이들, 병에 걸린 이들을 날마다 본다. 또한 우리는 돌로 지은 이 웅장한 건물들, 그 안은 각종 보석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는 이 건물들과 그 바깥에 있는 이 불편한 모습들을 (날마다) 본다. 그러나 이 생명들은 섬뜩하리만치 비참한 자신의 고통 속에서 썩고 죽어가도록 내버려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에 깊은 인상이 박히지만,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이 비참함에 대해서는
부끄러러워하지 않는다. 조직화된 종교 역시,이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였고,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이 사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떳떳할 수 없다.
그렇다. 라사는 거지들의 도시요, 오물의 도시요, 음모의 도시이다. 이 곳에는 위생에 대한 관념이 아예 없으며,
남자건 여자건 길거리에서 개들처럼 웅크리고 앉아 볼 일을 본다. 그나마 추운 날씨 덕택에 전염병이 퍼지지 않는 것이다. 죽은 개들이 길 위에 늘어져 있으며, 살아 있는 개들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야위었고 온몸에 종기가 가득했다. 나에게 총이 있었다면,저 비참한 동물들을 쏴죽여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죽은 개들은 살아 있는 개들이 먹이가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것들이 개들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먹이였기 때문이다. 새끼 강아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걷기 조차 힘들어하는 심하게 야윈 어미개의 배에서 태어난다.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이라 부르는 곳들 중 하나라는 곳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다. 모든 종류의 생명체,
심지어는 인간 생명에 대해서도 경시하는 풍조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들의 “죽은”종교 예식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자신들 주변에 있는 생명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다. 그 곳에는 가장 원시적인 의료용품조차도 심각하게 부족하다. 우리는, 죽은 달라이 라마들의 시신 위에 세워진 웅장한 건물들과 금색 지붕을 한 사원들 등 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러나 이곳은 가장 기본적인 친절함
조차도 부족하다.이런 종교들 안에 과연 사랑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결코 없다! 아무리 좋은 종교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차가운 교리만이 있을 뿐 어떤 사랑도, 어떤 생명도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대부분 여자들이 운영하는데, 마굿간(stall)을 그대로 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그곳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사업을 운영하는데 더 낫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우리는 우체국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라마승을 만났다. 그는 인도에서 교육을 받았다. 나는 요한네스버그에 살고 있는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나의 소중한 벗, 댄 원버그에게 편지를 부쳤다. 그의 아내 테디는 지금도 그때 받은 편지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편지를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물품 중 하나로 여기며 보관하고 있다.
라사(Lhasa)라는 이름은 “신들의 장소”를 뜻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인 조-캉(Jo-Kang) 사원을 방문하였다. 이 사원은 금빛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었으며, 지붕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 사원은 기원후 650년에
송-첸 감포(Song-tsen Gampo) 왕의 부인들이 들고 왔던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1925년에 천연두가 라사를 휩쓸었고 그 당시에 8000 여명이 죽었다. 시체들은 마구 내버려져 무더기로 쌓였었고, 도시 바깥 지역에서는 이 시체들을 태웠다. 그 때 악취는 참으로 역겨웠다고들 말한다.
조캉 사원을 지나가다 거지들과 순례객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사원 앞이 오물 천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몸을
엎드리며 계속해서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들은 그 앞을 배로 기어다녔는데, 걸어다니는 것은 사원을 모독하는
행위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손으로 지은 건물을 숭배하게 될 때 사람의 마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때 사람은
더러운 곳에서도 넢죽 엎드리며 정작 살아 있는 신의 진정한 성전인 자신의 영혼은 하찮게 여기게 된다.
내가 본 장면들은 매우 메스꺼웠기에 그 거대한 도시인 포탈라는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한 사원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다이아몬드와 귀한 보석들로 뒤덮인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그 불상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불상일 것이다. 이 불상 주변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램프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수 백년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고 버터를 태워가며 그 빛을 유지해왔다. 가는 길에 다른 사원들도 지나쳐왔는데,
그것들까지 다 설명하자면 그것만도 책 한 권이 될 것이다.
그래도 한 곳만 반드시 더 이야기하자면, 팔덴 라모(Palden Lhamo)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불상은 힌두교의 시바신의 아내인 칼리 신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겠다. 거기에는 두 개의 상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불상은 팔덴 라모를
소름끼칠 만큼 무서운 괴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바쳐진 사람들의 피부로 옷을 해입고, 사람의 두개골에서
골을 먹고 있는 괴물로 말이다. 그녀의 주위로는 질병과 죽음의 상징물, 무시무시한 가면들,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
되는 잔혹한 기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무서워 올려다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빈약한 자들은 사람들을 현혹하여 그 상을 숭배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닌다! 이런 것이 종교라면 최대한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이제는 공산주의자들이, 음모를 먹고 살면서도 소위 거룩하다고 자처하는
이 도시를 차지하여, 이곳을 신봉하라고 쇄뇌시켜왔던 가난한 신봉자들을 아무런 자비나 관심이나 사랑도 없이
내버렸던 시체더미에다가 이 종교를 내다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내가 포탈라에서 본 것들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기록하겠다.
* * * * *
티베트의 농사짓는 방법은 오늘 날에도 수천 년부터 전해 내려오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도 원시적인
쟁기들로 땅의 표면을 갈아 엎는다. 그러나 토양을 잘게 부숴주는 겨울철 추위가 없다면
이런 쟁기질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농경법도 그 나름의 매력이 충분하기는 하나, 야크나 드조(dzo)의 목 주변에 걸려 있는
깊이 있는 종소리가 이 황홀한 광경에 매력을 더한다. 여자들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쟁기 뒤를 따라 걸으며 맨발로 씨앗을 뿌린다. 그러면 씨앗들은 전통 써레(harrow)에 의해 곧장 흙으로 뒤덮이게 된다. 써레는 통나무로
만들어지는데, 불에 그을린 구멍들 사이 사이마다 단단한 나무 심들이 나란히 박혀 있다.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표면 위로 올라오게 되면,느각-파(Nga-Pa) 즉,주술사가 진흙덩이들을 잔뜩 들고 밭에 나타난다. 그는 땅에 주문을 외우고나서는,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수많은 정령(spirits)들에게, 티벳에서 자주 일어나는 우박과 폭우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해 주기를 바라며 기도를 바친다. 지평선에 구름이 나타나면,주술사는 자신의 오른손 약지를 펼치고 사람의 넓적다리 뼈로 만든 트럼펫을 강하게 훅 불면서 폭풍에게 돌아갈 것을 명한다. 만약 폭풍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우박이 떨어지면, 그는 극도로 흥분하면서 염주를 돌리면서 주문(mantrims)을 외운다.
그리고 주술을 걸어놓은 진흙 덩어리들을 한줌 집어서 폭풍을 향해 던진다.
우박이 농작물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고 지나가면, 주술사는 농사짓는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농부들은 주술사의 일에 대한 댓가로 그들의 수확물의 일부를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부과한 벌금도 내야만 한다. 이런 모습들은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 할지라도 바보같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추수 때가 되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농작물을 벰과 동시에 탈곡을 하면서 곡식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곡식을 갈기에 적당한 장소가 마련이 되면, 사람들은 황소들을 끌고 와서 옥수수건 뭐건 어떤 곡물이건
다 빻는다. 그렇게 곡식을 빻는 동안에 그들은 한껏 배불리 먹는다.
탈곡은 도리깨를 사용해서 하는데, 도리깨는 야크의 가죽 이음매로 연결이 된 나무조각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탈곡을 하고 나면, 곡식의 껍질과 낟알이 분리가 되고, 껍질은 따로 모아 가축들의 겨울철 양식으로 삼는다.
추수가 끝나고 나면 마을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한껏 술을 마셔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이 “행사(occasion)”는 노래와 춤으로 마무리된다.
2장
이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종교 건축물 네 개를 다 보았다. 런던에 있는 바오로 대성당, 로마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 바그다드에서 14 마일(22.5km) 위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티그리스 강 위에 있는 칸디마인(Khadimain)에 있는 회교 사원, 그리고 독특하면서도 찾아가기 가장 힘든 라사에 있는 포탈라 사원 이 네 가지를 내 일생에서
모두 보았다. 이와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온 세계를 통틀어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포탈라 사원은 세계 인구의 오분의 일을 대표하는 종교적 중심지이다. 불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라사에 있는
포탈라 사원과 온 불교의 영적 지도자인 위대한 달라이 라마의 의자(seat)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포탈라 사원은 라사 평야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키 추 강이 라사 평야
사이로 흐르고 있다. 이 웅장한 건물인 포탈라 사원은,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산들에 둘러 쌓여 있으며, 그 높이는 400 피트(122m)를 넘으며,폭은 거의 1000피트(305m)에 달한다. 그리고 별채까지 포함한다면,그 넓이가 1~1.5 평방마일(2.5~5.76km2)에 이른다. 겉은 회칠로 하얗게 칠해졌고, 높이 솟아오른 17층 짜리 이 건물은 16 세기에 지어졌는데, 이는 서양의 고층 건물 건축가들이 이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이다. 수 세기가 지나도 굳건하게 서 있는
저 모습을 보건데, 이곳의 건축 기술이 세계 최고가 아닐까 한다.
포탈라 사원은 주변 몇 마일 반경 이내에 있는 모든 것들보다 두드러져 보였다. 달빛에 비친 그 모습을 올려다
보았을 때, 회칠한 하얀 벽은 보이지 않는 영롱한 빛을 반사하며 찬란한 광휘를 내뿜는 듯 했다. 포탈라 사원에는
매력적인 면이 있었으며, 그대가 그것을 바라본다면 그대 역시 그 신비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늘 저 파란 창공에는 반짝이는 수 백 만 개의 별들이 비추고 있었으며, 보름달의 빛은 영롱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마치 우리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저 멀리서 승려들이 저 친숙한 옴-마니-받메-훔(Om Mani Padme Hum) 문구를 낭랑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승려들의 기도문을 바칠 때 그와 동시에
거대한 징의 깊은 음색도 함께 들렸다. 그리고 총하(chongha)들은 딸랑거리는 수백 개의 작은 종과 함께 어우러져
울렸는데, 그 소리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전에도 이 모든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그
소리들은 훨씬 경이로우며 깊은 느낌을 전해주었다. 단언하건데, 이는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이고 신비스러운 장면과 소리일 것이다.
“정말로, 세상에서 이런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나는 내 친구에게 말했다. 그는 깊은 사색 중이었고,
내 목소리가 깊은 내면 세계에서 잠겨 있던 그를 깨웠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놀라서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답했기 때문이다: “방금 뭐라 말했나?”
나는 같은 말들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대답했다:“참으로 아름답다구요.”
그러자 그는 오래된 기억이 그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포탈라 사원은 순전히 티베트의 건축물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고 있자니 나는 아라비아와 이집트의 건축물들이 생각이 났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숨이 탁 막혔던 것은 물론이고 색깔과 아름다운 구조의 매력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도 닮아 있었다. 그 것은 주변 환경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그저 거기에 갖다 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나무들과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들, 근처에 있는 호수,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금빛 지붕, 반짝이는 별들, 라마승들이 입을 모아 기도하는 소리, 거대한 징들이 깊게 울려 퍼지는 소리와 총하의 소리, 그리고 수 백개의 작은 종들이 딸랑거리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내 가슴에 벅차올랐으며, 이는 지울래야 지울 수 없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 영원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
내 친구는 많은 관리들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우리가 포탈라 사원 내의 여러 곳을 돌아다녀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냈다.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보았기 때문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만 언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달라이 라마의 아름다운 방들이다. 금으로 만든 수많은 불상과 금으로 만든 부조(golden facing)와 모노그램과 돋을새김으로 장식된 금붙이들이 방의 벽을 장식하였다.
달라이 라마의 권좌(throne)가 있는 방은 금으로 천장이 장식되어 있었다. 화려한 금빛 실크실로 짠 브로케이드,
깊은 보라색과 금색빛들, 이 모든 것들이 장인들의 손에 의해 절묘한 모습으로 어우러졌다.
달라이 라마의 무덤에는 수 백개의 금과 은으로 만든 잔과 그릇, 금과 은으로 만든 불상, 벽에 붙어 있는 금으로 만든 부조, 상자에 박혀있는 절묘한 세공품들, 그리고 그 안에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불상들이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죽어 부패하는 몸을 위한 집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낭비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은 내 숨을 탁 막히게 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전에 결코 본 적이 없지만,
생각하건대 다시 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갇혀져 있는 재산은 그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의 둥근 무덤 바깥 쪽은 금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확신하건대, 이 무덤 하나에서만도
수 백만 파운드에 맞먹는 금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계가 있었고, 이 값비싼 유적들을 둘러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을 떠나 다음날 아침에 잠사르로 길을 나섰다. 우리는 그날 저녁에 트락체(Tragtse) 수도원에 도착했다. 이 수도원은 산중턱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수도원이 눈으로 보이는 반경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내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바위 위에 저렇게 높고도 웅장한 건물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저 육중한 목재들과 돌들을 올려다 놓을 수 있던 것일까요?” 나에게 이 일은 인간의 노력을 넘어선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내 친구가 대답했다:“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저 건물은 지은 지 600년이 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처음 지었을 때처럼 견고하게 서 있지. 앞으로 600년이 흘러도 오늘날처럼 굳건히 서 있을거야.”
참으로 놀랄 만한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쉬 림포체(Geshi Rimpoche)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분명 내 친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으나 나에게까지 그 사실을 “알리는”(let on) 않았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깊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온화한 얼굴을 나는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마치 “결국 내가 다시 네 앞에 여기 이렇게 서 있게 되었단다.” 라고 말하는 듯 하였고, 내 가슴은 기뻐 뛰었다.
그를 다시 보는 기쁨 때문에 나는 그동안 느껴왔던 피로를 싹 잊었다. 우리는 그 날만 15 마일(24km)을 걸어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제서야 내 친구가 계속해서 서둘러야만 한다고 말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도원의 정문에 이르렀을 때, 수도원장이 나와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그는 키가 컸으며 어깨가 벌어진 사람으로서
짐작하건데 55살은 되는 듯 했다. 그가 환하게 웃자 완벽하게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그의 얼굴은 친절함 그 자체였고, 그의 이마는 그가 대단한 지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참으로 깊으면서도 부드러웠다.
아쉽게도 그는 티벳말만 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로부터 나오는 온화한 기운을 느꼈으며, 게쉬 림포체가
나를 위해 사전에 그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친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통역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티베트 말로 오가는 대화의 일부분은 파악할 수 있었지만, 아직 대화를 완전히 따라가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화 중에 잠깐 잠이 들었음에 틀림없다. 내 친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저녁을 먹을테고, 식사 후에 자러 가면 된다네.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세.”
너무 피곤해서 많이 먹지도 않았다. 수도원장의 침실로부터 떨어진 작은 방에 마련된 아늑한 침상으로 들어갔다.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전날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그날 아침에는 마치 약기운이 도는 듯 했다. 혹시 그대도
이런 건강한 피곤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누워서 잠을 자는 것 말고는, 심지어 옷도 벗지도 않고 오로지 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그런 피곤함을 말이다. 그날 밤 내가 그토록 피곤했던 것이다.
라사에서 이틀 간의 여정은 일주일에 맞먹을 듯 싶다.그리고 게쉬 림포체를 다시 만나는 것 자체가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게쉬 림포체가 티베트 말로 수도원장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내 아들은 지금
무척 피곤하여, 휴식을 반드시 취해야만 하네.”
나는 내가 그토록 피곤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기꺼이 잠을 잘 수 있었다.
머리가 베게에 닿자마자 나는 단단히 잠들어 버렸고 다음 날 아침 총하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깰 때까지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 것도 몰랐다. 우리 모두는 수도원장의 숙소(quarters)에서 함께 아침을 들었으며, 저 아래에
펼쳐져 있는 계곡을 내려다 보기 위해서 바깥으로 나섰다. 나는 정말이지 여기서 하루를 꼬박 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고, 내 친구에게도 내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나도 기쁘단다. 게쉬 림포체도 우리가 그와
함께 하루 더 지내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물었다: “그분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시게 된 건가요?” 내 친구는 설명해주었다:
“그분은 너를 무척 아끼고 있단다. 그가 이 먼 거리를 여행해서 온 것도 순전히 너를 보기 위해서이지.”
바로 그때 게쉬 림포체는 우리가 있던 곳으로 왔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나를 여기서
보게 되서 놀랐나 보지?”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어제 계곡을 올라오면서 당신이 제 마음에 너무나도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제 친구에게도
그렇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친구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미소를 지으실 뿐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대사님을 보게 되었을 때 제 가슴은 기뻐 뛰었습니다.”
나는 이보다 더 낫게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내 가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도 이를 알고 있었는데, 내가 말을 하는 동안 그이로부터 갑작스레 따뜻한 광채가 나와, 전기처럼 나를 통과하는 듯 느꼈기 때문이다.“저리로 가서 앉자.”그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캬추(Kya Chu) 강이 토빙추(Tobing Chu) 강으로 합류되는 계곡과 마주하는 곳에 있는 정자(alcove)로 올라갔다. 거기서 보았을 때 강물은 어떤 부분에서는 부드럽게 굽이쳐 흘렀으나 다른 부분에서는 강물이 바위들을
향해 질주하며 하얀 물보라를 대기 중으로 뿜어올리기도 했다.
수도원장과 내 친구는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서 게쉬 림포체와 나만 따로 남겨졌다.
게쉬 림포체는 말했다: “내 일생의 과업을 통해 얻게 된 좋은 모든 것을 너도 역시 갖게 되길 참으로 원한단다
(I do want you to have the benefit of my life`s work). 나는 네가 거짓인 모든 것을 보기를 바라는데,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너는 참인 것을 알게 될 것이야.”
나는 대답했다: “예, 제가 대사님(you)을 떠나고 난 후부터 줄곧 제 마음은 줄곧 변화(transformation)되는 상태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마음에 있는 그 무엇도 진리를 드러낼(reveal)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념도 어떤 경험도 심지어는 수 세기를 걸쳐 축적되어 온 지식들조차도 진리를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내 아들아, 그건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는 말했다.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진리란 마음 자신이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지. 그런데 그것은 진리가 아니거든.”
그때 나는 그가 그리스도의 요가에 대한 말을 계속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이런 내 생각을 알아차렸음이
분명한데,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말하던 방식으로 이내 그는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곧 그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고, 그가 말하는 단어 하나 하나는 모두 나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가 말하는 것들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myself)을 이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여 들었는데, 그것은 자아가 실재를 가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그대가 내가 쓴 책,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를 전에 읽어보았다면,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것이다.
그는 이런 말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된 명상만이 실재(the Real)를 드러낼 수 있다네. 비록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what it is) 결코 알지 못할 것이지만, 마음으로는 결코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란다.
마음, 즉 알려진 것(the known)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것(the Unknown)을 결코 드러낼 수 없단다.
마음이란 그저 관념, 기억, 경험들일 뿐이고, 이것들이 마음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지(this is all the mind is made up of). 그런데 이런 것들로는 결코 진리를 밝혀낼 수 없지. 대부분 사람들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의 마음이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아. 그들은 진리에 대한 책을 읽을지도 모르고, 순전히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불과한
이야기들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너는 그런 것들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진리는 오로지 내면으로부터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야. 진리는 결코 바깥에서 오지 않아.”
나는 대답하였다:“예,지난번에 제가 대사님(you)과 링마탕(Lingmatang)에 있었을 때,저도 그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관념이라는 것은 그저 마음을 편협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과, 편협해진 마음은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는
그 무엇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심지어는 기도조차도 참된 명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말이나 문장을 되풀이함으로써 마음을 잠잠하게 만들 수도 있겠고, 그 고요함 속에서 어떤 응답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은 실재에서 나오는 응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직 의식하지 못한(unconcious) 마음에서 나오는 응답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란 다만 무엇인가를 구걸하고(begging) 기원하는 것으로서, 기도는 결코 창조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항상 이원성(duality)이 존재하는데,
무엇인가를 구하는 자와 그것을 허락해주는 자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들, 이를테면 자동차나 덕이나
그런 것들을 위해 기도할 따름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어라.
이 말씀은 즉각적인 현재(the immediate present)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존재합니다(Everything is now).
명상이란 참으로, 마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알아내는 과정입니다.
바로 지금, 얼마 시간이 지난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NOW) 이 순간에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곧 그를 제한하고 있는 조건(conditioning)이며,
그것들은 지금(Now) 이 순간 생각의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항상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지금(Now)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반드시 알아차려야(aware of) 합니다.
그러면 어제도 과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재잘대는 것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실재가
거기에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재는 항상-현존하고 있는 지금입니다(Reality is ever-present Now).”
“그렇지.”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참된 명상이란 재빠르고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을 뜻하고,
그 마음은 드넓고 폭넓게 모든 것을 의식하고 있으며 무한하단다. 그래서 (참된 명상의 상태 안에서)
모든 문제는 그것이 발생함과 동시에 그 즉시 해결되어 없어져 버리고, 모든 도전은 어제의 반응이 없는
지금 속에서 순간순간 이해되어 버린단다. 참된 명상이란 자아를 밝혀내는 과정(self-revealing process)이야.
자아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명상이 아니야. 그건 다만 마음이 좁아지는(contracting)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명상은 아무 것도 밝혀낼 수 없지.”“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나는 말했다.“마음의 모든 내용물을 알아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활동하는 부분은 물론 무의식적으로 활동하는 부분들, 즉 마음이 깨어있을 때와 소위 말해
잠들어 있다고 말하는 부분까지도 말입니다.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저에게 보여주셨지만, 아직도 저는 가끔씩 그것이 쉽사리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곤 합니다.”
“아들아, 그건 네가 결과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설명해주었다. “그럼 이제 같이 실험해보자.
네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너는 항상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게 될 것이야.
그런데 새로움(Newness)은 결코 기억을 통해서는 오지 않아. 그렇지 않니? 기억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내가 하고 있듯이 너도 나와 함께 명상을 해보자꾸나. 그러면 너도 내가 하는 것들을 차례대로 경험하게 될 거야.
우리는 내일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존(the Living Presence)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하고 있는 중이란다.”
계속~~~~
[아래의 글은 未來사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옮긴이가 드리는 말씀(펌)
어떻게 하다 보니, <The Yoga of the Christ>를 번역할 기회가 저에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영성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이라면, 예전에 정신세계사에서 출판했던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라는 책을 한 번쯤은 접해 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의 원문 제목은 <Beyond the Himalayas>이며,
<The Yoga of the Christ>는 그 책의 후속편입니다.
어떤 영화가 흥행하게 되면, 상업적 목적으로 비슷한 구성 방식으로 2탄, 3탄을 내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Beyond the Himalayas>와 <The Yoga of the Christ>는 사실상 한 권이라 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두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만 저자의 사정으로 인해
시기적으로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쓰게 되었다는 것을 추리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The Yoga of the Christ>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거부감이 좀 심하게 들었습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그리스도의 요가일 것인데, 어설픈 혼합주의가 아닐까하며 읽어보지도 않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 책의 존재는 알았지만, 이 책이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의 후속편이라는 것도 몰랐고,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았으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원문으로 읽어봐야겠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서 <그리스도의 강론>이라는 제목이 붙여 있는
14편의 글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 글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글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니,
<그리스도의 강론>의 원제는 <Divine Healing of Mind and Body>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의 저자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를 읽다보면 이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 책의 역자는 <주께서 다시 말씀하신다>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이는 <Divine Healing of Mind and Body>의 부제인 것인데, 본래는 <Master speaks again>입니다.
참고로 <그리스도의 강론>은 아직 국내에 출판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내용에 공감하여 그 책을 번역하여 온라인상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Murdo Macdonald-Bayne을 검색어로 인터넷을 뒤지다보니,
그와 관련된 홈페이지도 여럿 발견하였고,
그 중 하나에서 <Beyond the Himalayas> <The Yoga of the Christ> 원문 전체를 접하게 되었고,
이 번역본의 앞장에 수록해놓은 저작권 관련 사항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이 두 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판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내용 말입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두 권에 대해서는 온라인으로 공유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제가 직접 번역을 하여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공유를 해야겠다는 마음까지도 먹게 되었습니다.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에 나오는 이름과
<그리스도의 요가>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이 다소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 부분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컨대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에서는 ‘게시 린포체’로 표기해 놓았는데,
실제 원문은 ‘Geshi Rimpoche’로서 ‘게쉬 림포체’로 표기하는 것이
더 원음에 가깝지 않은가 의문을 품었던 것입니다.
일본어를 아시는 분들에게 물어본 결과, 일본어에는 ‘쉬’나 ‘림’이라는 발음은 없지만,
‘시’나 ‘린’이라는 발음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볼 때, 기존에 출판되었던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는
영어 원문을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출판되었던 것을 중역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굳이 이 사실을 말하려는 이유는,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를 번역하셨던 분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시는 분들 중에서 원문을 보고
새로 번역하시는 분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요가>도 번역했으니,
제가 다시 <Beyond the Himalayas>를 번역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요가>를 번역하면서 많이 지치기도 했고,
하면 할수록 영어 실력은 물론이고, 한국어 실력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영어를 읽고 대충 내용을 파악하는 것과 원문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내어
다른 언어를 쓰는 독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번역하는 일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을 제 스스로 너무나도 처절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오역, 오타, 누락된 부분들을 수없이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제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원문도 파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순수한 가슴을 지니신 분이
후에 이 책을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번역하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 글을 보다 깔끔하게 다듬어 내놓고 싶었지만,
실력과 시간의 한계, 그리고 제 개인적 사정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어려울 듯합니다.
번역을 하기 힘든 문장이나, 뉘앙스를 살리기 어려운 단어들에 대해서는
괄호를 쳐서 원문을 작은 글씨로 병기해놓았습니다.
제 스스로 많이 걸려 넘어졌던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첫째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책의 내용들을 지적으로 즐기는 태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누누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내가 지금 마음을 보는 공부를 하는 것인지,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인지, 번역을 함으로써 자기만족을 취하거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것은 아닌지 제 스스로 혼동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기 글을 남기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넘어지고 있습니다
.
혹시 <Beyond the Himalayas>와 <The Yoga of the Christ>를
다른 곳에 공유하시고자 할 때에는,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파일로 올려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자의 다른 책, <그리스도의 강론, Divine Healing of Mind and Body>은
한국어로 출판하는 것에 대해 검토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번역본 2쪽에 실려 있는 ‘저작권에 대한 참고사항’을 깔끔하게 번역해주신
그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혹 문의하실 것이나,
지적해주실 사항이 있다면 aim_of_life@hanmail.net으로 연락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요가 원문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murdomacdonaldbayneyoga.homestead.com/YOGAhomepa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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