意識-書

인간이, 자신의 존재기반을 모르고/ 이남덕

눈내리는 새벽 2010. 3. 13. 15:42

 

 

                   

 

 

인간이,  
자신의 존재 기반을 모르고
분별심을 내고 무리를 짓고
상생(相生)의 기반인
상대를 무시하고 짓밟고 하는
현재의 인류문명은 위기 인듯하다


여든한 살의 수행자/글-윤시내(워싱턴 거주)        
이남덕 선생님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김성칠 씨의 책『역사 앞에서』였다.
피난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서 6·25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자료를 찾고 있던 중,

이 책을 한 번 읽으라고 노광욱 선생님이 빌려주신 책이 바로『역사 앞에서』였고,
그 책의 끝부분에 김성칠 씨의 아내인 이남덕 선생님의 글이 실려 있었다.

남편이요, 스승이요, 조국수난의 동반 자인 김성칠 씨에 대한 연모의 정이

전쟁 중의 고난, 아픔과 함께 잔잔한 고도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1951년 김성칠 씨가 세상을 떠나신 뒤 혼자서 네 자녀를 키우시고

국어학을 계속하여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수십 년 을 가르친 뒤에

이제는 은퇴하셨다는 개인적인 여건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미주 현대불교’에서 취급하는 도서 목록 중에 이남덕 선생님의 저서

『여든 살의 연꽃 한 송이』가 있는 것을 보고 책을 사서 읽었다.

오십 편에 가까운 수필에 나타난 이남 덕 선생님은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며

스스로 경험하기 위해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용기 있는 분이었다.

남의 좋은 것을 칭찬하면서도 자기 것에 대한 애정과 자부로 탄탄하게 다듬어진 분이었다.
물질뿐 아니라 자아를 버리는 불자의 수행을 감사한 마음으로 걷는 아리따운 분이었다.
나는 마음으로 그분을 깊이 흠모하게 되었고, 언제고 한번 찾아뵈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11월 초에 시작하여 삼 주일 동안 한국을 여행하는 일정에 갑사를 끼워 넣은 까닭은

그곳에 이남덕 선생님이 계시 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전 이모님 댁에 도착한 것이 오후 한 시경, 여기서 갑사를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지금 이 시간에 갑사에 가는 것 은 무리이니 다음날 가는 것이 좋겠다 고 이모님이 말리셨다.
그러나 다음날은 또 다음날 대로 일정 이 따로 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잠깐 다녀오겠노라고

우겨서 집을 나섰다.
유성 온천 경찰서 앞에까지 오니 마침 갑사 가는 버스가 있었다. 갑사까지 약 40분,

유성을 빠져나오며 이어지는 시골길을 따라 갑사 입구에 도착한 것이 3시 40분.

대전으로 나가는 막차 가 6시 40분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절에 이르는 길로 들어섰다.길의 양 편으로

초겨울의 나무들이 검 은 둥치와 마른 가지들을 펴고 흐리고 어둑한 하늘을 받치고 서 있었다.

갑사 입구에 있는 게시판을 훑어보니 이곳에 『월인석보』 제21권의 원본 판목이

보물로 지정, 보호되어 있고,그 판본의 간행이 있었음을 알리는 기사가 붙어있다.

백제불교사상연구회라는 간판이 붙은 방 앞으로 가서 인기척을 내고,

책을 한 권 구입할 수 있는가 물으니 할 수 있다 고 하여 한 권 산 뒤에,

혹시 이남덕 선생님이 계신지 물었다.
대자암에 계시다는 대답을 듣고 만나볼 수 있는지 여부를 물으니 계시기만 하면

가능하리라는 대답이다.


대자암은 큰길을 따라 한 20분 계속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초겨울이라고는 해도 네 시면 아직 밝을 때이나 날씨가 흐려서

주위는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 산모퉁이를 돌면서 땀이 흘렀다.
산의 꼭대기, 첩첩으로 둘러선 계룡산 자락에 대자암이 있었다

.
마침 선방인 듯한 곳에서 나오는 분이 있어서 이남덕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어 왔노라고 하니
누구라고 전할는지 묻는 것이다. 우리 이름을 대도 소용없는 일이라, 워싱턴에 사는 독자가 왔노라고만 했다.
그분은 선생님을 뵙고 저녁 공양을 하고 가라고 하신다. 괜찮다고 했더니,

그래도 공양을 하고 가라고 재차 권하 신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이모님이 대전에서 기다리시기 때문에 안 되겠노라고 사양하고

방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이남덕 선생님은 색깔이 곱고 넉넉한 회색 옷을 입고 계셨다.
우리는 선생님께 절하고 미리 연락도 없이 오게 된 경위를 말씀드렸다. 우리의 얘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
선생님은 아무 스스럼없이 마치 우리가 선생님의 오랜 제자이기라도 한 듯이,
가부좌를 하신 앉음새와 정정한 목소리로 여러 가지 얘기를 하셨다.

선생님을 따라 대자암에 와서 참선하시는 87세 된 보살님의 얘기,
미국에 사는 큰며느리가 손자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한글로 할머니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것을 칭찬해 주었다는 얘기,
하루 여덟 시간을 꼬박 앉아서 수행하 시는 얘기, 여든한 살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쓰려고 계획하고 있는 글 은 ‘나의 유언’이 될 것이라는 얘기 등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이 잔잔하고 재미있게 주변 얘기를 들려주셨다.
선생님의 얘기를 듣는 동안 산길을 바삐 오느라고 화끈거리던 우리의 얼굴은 서서히 식고 등줄기를 흐르던 땀도 멎었다. 그 대신 그와는 다른 열기 가 선생님의 말씀에 실려 우리에게 전해졌다.
“며칠 전 나라에서 훈장을 준다기에 서울에 갔었어요. 서울에서 뜻밖에 친한 친구 장례식을 치렀어요.” 하고
선생님은 또 다른 애기를 꺼내신다. “나이도 있고 해서 요새는 내 주변의 친구들을 하나둘씩 잃는데..
이번에도 친한 친구 한 명이 세상을 떴어요. 어느 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해서 갔었지요.
요새는 사람 숨이 끊어지자마자 냉동 실에 넣는데 그건 잘못하는 일이에요. 숨이 끊어진다고 해서 곧 죽는 것은 아니거든요.
난 그 앞에서 『티베트사자의 서』에 나오는 경전을 세 번 읽어줬어요. 그 친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어요.
사람의 혼은 3일 동안은 자기가 떠나온 육체 근처에서 떠돌고 있대요.
그 혼이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와줘야 해요.
울고 애통하고 떠들며 소란을 피우면 이 중요한 시기를 망쳐버리는 거예요.
난 그래서 자식들에게 당부해 두었어 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내 손으로 몸 깨끗이 하고 옷 깨끗이 입고할 테니까
내가 숨이 넘어가거든 내 몸에 손 하나 대지 말라고요.
냉동실에는 물론 넣지 말고, 그렇다고 소리 내서 곡을 하거나 너무 슬퍼하지 도 말라고요.
내가 극락에 갈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바로 이때이니까. 이 중요한 시간에 나는 지성을 다해서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처님께 빌 터인데 주위에서 너무 애통해하면 방해가 돼 거든요.


‘나의 유언’에 쓰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지요. 내 두 분을 위해서도 꼭 쓰지 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면서 겁냄도 회한도 아쉬움도 다 접어두고 마지막으 로 남은 기회,
사람의 혼백이 육체를 아주 떠나기 전의 사흘을 불자로서의 수행과 정진으로 이어가고자

열망하는 저분은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가. 어찌 저리자유스럽고 부드러우며 넉넉하며 담담할 수 있는 것일까.

 

여섯 시가 되었다. 일어나서 부지런히 걸어야 막차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께 절하고 일어났다.
바깥은 이미 바로 눈앞이 보이지 않은 어둠이고 골짜기를 타고 치닫는 바람에 실려 비까지 뿌렸다.
차가운 바람과 빗줄기는 그러나 우리의 열띤 얼굴과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었 다.
지척이 보이지 않는 험한 산길을 그냥 발이 놓이는 자리를 디디며 내려왔다.
보이지 않아도 디뎌서 안전한 곳을 발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몸은 발에 맡기고 마음은 계속 선생님께 두고 있었다.
미처 인지(認知) 하지 못했던 인연의 줄에 끌려 우리는 선생님을 찾아뵙고 한 시간 남짓 그 분과 마주 앉아 있었고,
이 만남은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의 줄이 되어 선생님과 우리를 연결시켜 주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 인해 온 우주의 주인이 되는 것. 풀, 나무, 짐승, 벌레, 남과 나, 그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고로 그 모두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보호해야 된다는 것.
지금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지성을 다해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해야 한 다는 것.
나눠가짐으로 인해서 더욱 풍성해지는 삶의 신비. 자유로움과 지혜와 수행의 자리는 제각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 라 모두 한 곳이라는 것.
이남덕 선생님은 그분을 에워싸고 있는 경험과 지혜와 수양의 바다에서
한 움큼의 물을 퍼올려서 우리가 마시 도 록 나눠주셨고, 선생님의 보시로 인해 우리 마음밭은 새로 보습을 댄 듯이 풍요롭고 활기차게 되었다

보현행자의 목소리 / 글· 윤시내/ 월간 불광 2001년 3월호



나의 참선 고백
瑩宙 李男德  / 이화여대 명예교수

동안거 해제날(음 정월보름날)을 앞두고 갑사 대자암 선방에서는

정영 큰 스님을 모시고 열 이튿날 저녁 참선 시 간에 자자회가 있었다.
나는 여기 시방 당 선방에서 네 번째 안거를 마치는 셈인데

큰 스님을 모시 고하는 자자회 모임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자회란 안거 석 달 동안 겪은 각자의 참선 공부, 기타

자기 심성의 현주소를 반성, 점검하여 대중 앞에 공개보 고하 는 모임이다.
널따란 선방에 전후 석줄로 앉았던 보 통때와는 달리 빙 둘러 방석이 놓여졌 다.
스님들과 거사, 보살님들이 앉은 차례 대로 한 사람 한 사람 발언하는데

그 차 례도 보통 때의 줄 서 앉았던 순서를 일사불란하게 한 줄로 원형을 이룬 것이니

나는 우선 이런데서부터 감탄스러웠다.


겉보기에는 질서가 없는 듯하면서도 내면세계는 질서 정연한 것이니 말이 다.
또 진술하는 내용의 진지성이나 발표하는 이의 태도 같은 것을 보면서 배울 것이 많았다.
참선 경력이 얕은 사람들은 열성적인 것이 특징이고
연조가 긴 분들은 표현을 적게 하려 는데 하심의 노력이 역력하다.
이러한 각자의 진 술에 대하여 큰스님께서는 일일이 각 사람에게 적절한 가르침을 주신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되도록 간결하게 요점만 분명히 말하고 싶었으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요즘 참선 공부하는 중에 마음을 집중하는 점은 불광법회에서 매 법회 때마다 맹세하는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을 생전에 용 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의 앞부분
즉 내 생명과 부처님의 생명이 일치하는 그 대목을 간절히 염하면서 진여불 성(眞如佛性)
즉 부처님을 실감하려는 노력을 참선의 첫머리에 호흡을 가다듬는 상태에서 도 입시키는 것이다.
이미 내 몸, 내 마음, 내 생명이 우주 법계 가득한 부처님 생명, 진여불성 속에 들어가 있거니

환희심이 솟구치는 속에 입정으로 직결되면 나는 다른 이들 이 화두 들듯이

'아미타불' 하나로 집결 시키는 것이니 이 것은 나름의 '염불선 (念佛禪)'의 방식이다.
그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만 한정되어 계시는 부처님이 아니고 진여불성 부처님의 총명사임은 물론이다.

우리 불교는 유신론(有神論)이 아니고 대우주의 도리인 진리 그 자체를 부처 (佛·Buddha)로 표현하고
그 명칭도 '여래(如來), 진여(眞如),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진아(眞我), 열반(涅槃), 극락(極樂), 주인공(主人公),

중도(中道), 묘각(妙覺), 일물(一物)'등 그 이름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진리의 자성공덕이 무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미타불을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일불(三身一佛)로 가르쳐주신 청화(淸 華) 큰스님은 그 스승이신 금타(金陀) 대화상의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을 우리에게 설해주셨는데

우리가 참선 첫머리에 이 관법으로 인도되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함을 금할 수 없다.

'마음은 허공과 같을새, 한 조각구름이나 한 점 그림자도 없이 크고 넓고 끝없는 허공 같은 마음세계를 관찰하 면서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비로자나불을 생각하고, 이러한 허공 같은 마음세계에 해와 달을 초월하는 금색광명을 띤
한없이 맑은 물이 충만한 바다와 같은 성품바다를 관찰하면서 원만 보신(圓滿 報身)인 비로자나불을 생각하고,

안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형체 없는 중생(衆生)과, 밖으로 일월성신 (一月星辰) 산하대지(山河大地)

삼라만상(森羅 萬象)의 무정중생(無情衆生)과 사람과 축생과 꿈틀거리는 뜻이 있는(有情) 중생 등의 모든 중생들을
금빛 성품 바다에 바람 없이 파도가 스스로 뛰노는 거품으로 관찰하면서 천 백억 화신인 석가모니불을 생각하고,
다시 저 한량없고 끝없이 맑은 마음 세계와 청정하고 충만한 성품바다와 물거품 같은 중생들을 공(空)과 성품(性)과

현상(相)이 본래 다르지 않은 하나라고 관찰하면서, 법신·보신·화신의 삼신이 원래 한 부처인 아미타불을 항시 생각하면서
안팎으로 생멸하는 모든 현상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덧없는 행동들을....
마음이 만 가지로 굴러가는 아미타불의 위대한 행동모습으로 생각하고 관찰할 지니라.'


(金陀 和尙 『金剛心論 』「菩提方便門」과 淸華 禪師 法語集 Ⅰ 『正統禪의 香薰』, Ⅱ『圓通佛敎의 要諦』 )
이러한 보리방편 門으로 인도된 나의 참선 공부는 이제는

처음 한 줄 '마음은 허공과 같을새'만 생각해도 우주 전체 생명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에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한 마디로 환희심이 솟구치는 것이다.
내가 불광법회에 다닌 것이 대각사 시절부터니까 20년 전이었고,

태안사 정중당(淨衆堂)에서 참선을 시작한 것이 꼭 10년 전 일이다.
나는 광덕 큰스님과 청화 큰스님의 덕으로 우주생명을 실감하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참 스승복을 많이 타고 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84년 어느 봄날 나는 불광법회에 나갔다가 이층 광덕스님 방에 문병 차 들렀었다.

그때 큰스님은 말씀하시기 도 힘드실 만큼 편찮으셨는데,

옆에 있던 종이쪽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셨던 것을 나는 지금도 소중 히 간직하고 있다.
'구체적(具體的) 실존진리(實存眞理)를 관념적(觀念的)으로 파악(把握)할 때

진리(眞理)가 추상진리(抽象眞理)가 된다'

내가 얼마나 진리생명이신 부처님을 실감하지 못하고 관념적으로만

겉돌고 있는 것이 안타까우셨으면 그 편찮으신 중에 이렇게 적어주셨을까.
금년 새해에는 '은혜의 새해가 열렸다'는 광덕 큰스님의 글을 불광사 남동화 기자님이

연하장으로 보내주셨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자비하신 부처님 은혜가 온 누리에 새롭게 부어지는 새 아침이다.

기뻐하자. 감사하자. 밝은 새해가 다시 열렸다.
우리는 진리 속에 살고 진리로 가호받 고 있는 것을 생각하자.

부처님께 인도되고 은혜받고 있는 것을 깨닫자.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원래로 청정하고 안정되어 있다.

우리 앞에 가로 놓인 고난이란 원래로 없다.

부처님이 가호하시어 무한 위력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햇빛을 이기는 어둠이 없듯이 부처님 위력 앞에 고난이란 없다.
마음에서 생각함으로써 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처님은 설파하셨다.

마음에 있는 것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 해 동안
불행, 불안, 병고, 재난을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 성취, 돕는 기쁨만을 언제나 생각한다.

이래서 밝은 운명이 우리를 따른다.

이래서 이 한 해는 다시 밝은 해다.
환희, 성취가 너울 치는 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온 천지 형제들 감사합니다.'
나의 '나무아미타불! 의 염불선의 밑뿌리는 바로 '마하반야바라밀!'의

염송에서 자라나 온 것임을 생각하며

자자회에서 무어라 간단하게 감사의 말씀을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요즘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 것이 올바른 참선의 길인지 알 수가 없으나

나는 이 지복(至福)의 정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날 밤  정영 큰스님은 내게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지복의 정서에만 잠겨있지 않아도록, 깨달음의 체험을 향해서

힘을 모으라는 가르침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아직 나는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 다.
이번 안거 중 내가 제일 나이 많은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노인불수(老人不修) 파거불행(破車不 行)인가' 아니다. 78세의 새 출발이다.

현대불교 불기 2543년 9월 1일 236호
이남덕 수상집‘여든 살의 연꽃 한송이’

- 흐르는 물처럼 사는 ‘中道의 삶’ -
- 인생역정, 불퇴전의 수행열정 -
- 일기형식 차분히 정리 -
◇일생동안 학문의 길을 걷다가 불법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정년퇴임 후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이남덕 씨.
“70세에서 80세 사이의 정신과 육체 건강관리 실제를 여기 한데 묶었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공감하자는데 있지요.”

동아대·숙명여대·이화여대 국문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86년 정년 퇴임하고
경기도 포천 죽엽산 자락 말구리 마을과 갑사 대자암에서 대자연과 벗하며

구도생활을 하고 있는 이남덕 씨(80)가 수상집 <여든 살의 연꽃 한송이>(불광 刊)를 내놓았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공감하자”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의 속살은 적어도 공생공존의 중도사상을 담고 있다.
88년 청화스님과의 만남 이후 매년 안거와 글쓰기를 병행해 온

이남덕 씨가 낸 이 책은 자신의 수행을 일기형식으로 객관화시킨 신심의 결정체다.
그는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이 참다운 삶 인가 하는 보편적인 물음이

생각의 주제였다”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 쓴 주제들도 고행의 의미,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일, 사람 되어지이다,
참(眞·誠)을 구하는 마음 등 ‘삶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보편적인 수행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여든 살의 인생역정과 불퇴전의 수행 열정이 농축돼 있어

수행의욕을 북돋워 주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수행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고통은 우리들 삶에 따라붙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조차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참 생각을 가질 때 깨달음을 얻는다.

진리를 갈망하는 구도심이 강렬하면 할수록 어떤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다”가

이 씨의 수행이념 중 하나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철야정진을 하고 매년 안거수행을 한다.
저자가 수행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중도(中道)를 얻기 위함이다.

이 책에 실린 글에서도 중도사상을 간단없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생활공간 곧 처처가 수행공간인 셈이다.
참선과 노동 그리고 일상의 단상을 적은 이 책 속에서는

해묵은 된장처럼 진한 수행의 향기가 묻어 나온다.

이 책은 정년퇴임 후 참선을 시작하면서 월간 불광지에 매달 기고한 내용으로

<두메산골 앉은뱅이의 기원>의 후속 편이다.


   

또 이 책에는 선학특강 3편을 비롯 중도의 길, 생명의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물렁물렁한 물켕이 심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3기 80세 출발의 소원이다는 이남덕씨는

 “연꽃 한송이로 상징되는 불교의 무아·무소유의 가르침이 언제나 환한 빛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에

행복과 감사를 가지고 ‘그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로 짧막하게 소감을 말했다.

     


   

김중근 기자(gamja@buddhapia.com)

 출처 :금강(金剛) 불교 입문에서 성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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