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마음의 등을 켜서 그 포근함에 안기운다면...
-마흔 아홉살에 이르면 반프라쉬(vanprash)를 시작해야 한다-
인도에서 쉰 살에 이른 사람은 반프라쉬(vanprash)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프라쉬! 쉰 살, 그의 눈은 숲은 향하고 등은 시장을 향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반프라쉬는 아름다운 낱말이다. 이 말은 곧 눈이 히말라야 즉 숲쪽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등은 이미 그 생명을 다한 생활과 욕망, 야망을 향한다. 비로소 홀로있음 쪽으로, 자신의 존재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쉰 살 이전, 삶은 너무나 분주해서 그대는 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지고 가야 할 책임이 막중했고, 키워야 될 자녀들이 있었다. 이제 자녀들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여 안정을 찾았고, 그대는 마흔 아홉 살이 되었다.
히피처럼 살던 자녀들은. 스물 여덟 살에 이르면서 히피 생활을 버리고 안정을 선택한다. 이제 그대는 안정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집을 초월한,집 없는 행려객이 될 수 있다. 마흔 아홉 살, 이제 숲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면으로 옮겨가야 한다. 점점 더 명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가슴이 기도로 채워져야만 한다.
그리고 쉰 여섯 살, 변화가 다가온다. 혁명이 일어난다. 이제 히말라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짐을 꾸려서 직접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직접 두 발로 그곳을 향해 떠나야만 한다. 삶이 끝나 가고 죽음이 면전에 있다. 마흔 아홉 살, 이성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것처럼, 쉰 여섯 살 그대.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다. 사회, 사회적 형식 그리고 사회적인 모임 등, 쉰 여섯 살이 되면 로터리 클럽이나 라이온스 클럽같이 바보같고 유치한 것들에서 퇴직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쉰 여섯 살, 사회적으로 얽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비로소 성숙해져야 할 시기이다. 충분히 누렸고, 충분히 배웠으니 이제 책장을 덮어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두 손을 모아 감사함을 표시한 뒤, 얽힌 줄을 풀고 나와야만 한다.
쉰 여섯은 누구나 당연히 구도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시기이다. 구도의 길, 포기가 자연스러운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한다. 삶에 입구가 있다면, 출구도 당연히 있는 법.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다면, 우리는 호흡곤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들어가기만 하고 나올 수 없다면, 괴로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당연히 출구가 있어야 한다. 그 출구가 바로 구도의 길이다. 사회로부터 벗어나 구도의 길로 들어선다. 쉰 여섯 살, 그대는 이제 다른 무엇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예순 세 살이 되면, 사람은 누구나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쏠린다. 명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내면으로 옮겨가면서,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고 오직 나 하나만 남게 되는 것.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면서 삶이 다시 풍족해진다. 지성이 높아지면서 성숙과 이해가 풍성해진다. 이제 다시 순수해진 그대, 내면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7년밖에 남지 않았으니 죽음을 준비해야 되지 않겠는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란 무엇인가? 죽음을 축제할 수 있는 준비가 바로 그것이다. 행복하고 기쁘고 자발적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죽음을 맞이한다. 신이 이해와 존재의 기회를 주었고 충분히 배웠으니 이제 휴식을 취하고 싶어진다. 궁극적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잠깐 동안의 체류가 끝났다. 이상한 나라에서 충분히 헤매 다녔다.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이상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 때가 되었다. 왕자는 비로소 자신의 왕국으로 복귀해야만 한다.
예순 세 살. 문을 완전히 닫아야 할 때가 된다. 모든 에너지가 내면으로, 내면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제 에너지는 더 이상 어느 곳으로도 흘러가지 않는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점점 더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고, 나 자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주변으로부터 벗어나 전적으로 혼자 남겨진다. 에너지가 점점 소멸해간다.
일흔 살에 이르면, 우리는 비로소 준비가 된다. 이 자연스러운 패턴을 따르면서 살아왔다면, 죽음 직전-죽기 9개월 전- 우리는 죽음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아기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9개월을 보낸다. 그와 똑같은 원이 반복된다. 죽음이 찾아오기 9개월 전, 우리는 다시 자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어머니의 그것이 아닌 우리들 내면에 있는 자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인도 사람들은 신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성소를 가바(garbha) 즉, 자궁이라고 부른다. 신전의 가장 깊은 곳을 아주 상징적으로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인 자궁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9개월, 이제 내면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되면서 우리의 몸이 곧 자궁이 된다. 언제나 불꽃이 활활 피어오르는 곳, 한 번도 불이 꺼져본 적이 없는 곳, 신전의 한복판, 신이 살고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다.
이 자연의 법칙에서 미래는 필요치 않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오쇼, 반프라쉬에 관해 말하다...
출처:우리땅 걷기 산과강 카페-수리 전경숙)원문보기](폐쇠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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