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년 春

아름다운 영혼

눈내리는 새벽 2008. 4. 4. 08:08

 

 

행복,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람들은 좋은 직장, 좋은 급료,

좋은 아내, 좋은 아이들, 좋은 차, 좋은 집 등을 원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각 언어들마다 우유를 지칭하는 말이 있습니다.

케랄라 사람들은 우유를 '빠알' 이라고 부르고, 영국 사람들은 '밀크' 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다른 언어들에도 '우유' 를 지칭하는 말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으로 불리더라도, 우유의 색과 맛은 똑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이슬람 교도들은 알라라고 부르고,

힌두교인들은 시바나 크리슈나 또는 성모라고 부릅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하느님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문화를 토대로 해서, 하느님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그를 예배합니다.

 

하느님2

당신이 하느님을 향해 한 발 가까이 다가 가면,

하느님은 당신을 향해 백 발 가까이 다가 오십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는 하느님 뿐입니다.

백 가지 착한 일 이후, 한 가지 실수에도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백 가지 나쁜 짓 이후, 단 한 가지 착한 일에도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받아 들이십니다.  

구도의 생활

구도의 생활은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말하십시요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영혼의 평화를 얻기위해서 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집을사고 결혼하고 근사한 직장에서 일하는 데서 평온과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나는 구도의 길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신적 평온과 만족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도 사후해탈도 아닙니다 

참 그런데 당신들은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만한 제자

 

어느날 암마가 제자하나를 꾸짖었습니다 그의 잘못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암마는 " 너는 에고 ego(나라는 관념, 아상)가 너무 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제자는 전부터도 무척 오만해서 동료들과 자주 말다툼을 해왔습니다 그가 암마께 대꾸했습니다.

암마, 암마께서는 이세상일을 모두 다 알고 계시지 않나요?

그렇다면 제가 에고가 세다는 사실도 아셨을텐데,

저를 왜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까?"

그러자 암마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왜 예수그리스도가 유다를 제자로 받아 들였는지 아느냐?

유다가 자신을 배반하고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가 몰랐다고 생각하느냐?

예수는 이 사실은 처음부터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예수는 유다를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가 다른이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유다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예수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마하트마였다면,

왜 그는 반대자들이 그를 십자가형에 처할때 그것을 막아 내지 못했나요?

암마: 예수그리스도는 희생과 용서의 위대함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마하트마들은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들이 받는 수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하트마들은 고통스럽더라도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선례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그들의 용인이 없으면 사람들은 그들 가까이 다가 갈 수 조차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하는 것을 그들이 원하지 않을 때는, 사람들은 그들에 반대 할 수 조차도 없습니다.

적대적인 세력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그 상황을 어떤 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을

세상에 가르치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고난을 참고 겪어 냅니다.

 

카르마와 윤회업 karma 과 윤회는 어떤 관계입니까?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카르마 때문입니까?"

 

암마: 우리 몸은 오라로 들러 쌓여 있습니다. 목소리가 녹음테잎에 녹음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행위도 오라에 기록되어 남겨집니다 선행을 하는 사람의 오라는 금빛으로 변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 장애는 저절로 제거 되고 모든 것이 바람직 하게 끝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일을 일삼는 사람의 오라는 흑빛으로 변합니다 장애와 난관들이 이런사람을

언제나 따라 다닙니다 죽은 후에도 그의 오라는 지상에 남겨집니다.

벌레의 먹이가 된 후, 그는 다시 이세상에 태어납니다

 

카르마의 법칙

질문: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과거에 행했던 행위의 열매라고 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고통 받는 사람을 돕는것이 옳은 일입니까?

암마: 그가 경험하고 있는 고통이 그의 과거 행위의 결과라면,

그를 돕는 것은 당신의 과거 행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바사나 (Vasana, 잠재 습성)가 그를 고통을 경험하도록 만들었다면,

당신의 바사나는 당신이 그를 돕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모두 과거 행위의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고통 받는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으면,

당신은 그 부덕한 행위의 결과를 후에 경험해야만 합니다.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암마: "언제 깨닫게 되는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구도자의 갈망과 노력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완행 버스를 타면 잦은 정차로 해서, 언제 목적지에 이를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고속버스는 정차 수가 적기 때문에 도착 시간을 다소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한 순간의 낭비도 없이, 궁극의 진리를 생각하며,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아 간다면,

짧은 시간에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강도 높은 사다나(수행) 없이는 언제 그곳에 다다를지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전에는 신을 깨닫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하다고 씌여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의 다른 부분에서는 죽고 태어남을 백번 반복해도 깨달음을 얻기는 어렵다고 씌여 있습니다.

수행의 Sadhana 강도, 전생에서 얻은 소양이 깨달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결정합니다.

눈을 감고 어딘가에 그저 앉아 있는게 수행이 아닙니다. 궁극의 진리를 항상 의식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순결함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정결해지면 쉽게 신의 자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숙명입니까?

암마: 어떤 사람들은 숙명을 신의 뜻으로 받아 들이고,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옳지못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바사나 (습기, 잠재 성향)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 행동의 결과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전생에 행한 행위의 결과를

우리는 숙명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숙명은 진실한 기도와 명상과 같은 자기 노력에 의해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무심 無心 (마음의 제거)

 

질문: "암마, 저는 아주 오랫동안 하느님을 섬겨 왔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평온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암마: "평온치 못한 것은 마음이 아닙니까? 그러니 마음을 제거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질문: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암마: "왜 안되겠습니까? 종교는 그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까? "

"마음이 감각 대상(쾌락)에 쏠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 것은 영적 수행 sadhana 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기회만 나면 마음은 바깥으로 쏠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 때마다 "안돼, 너 못 나가"라고 말하고, 마음을 내부로 향하게 하십시오."

 

질문: "어떻게 해서 인간은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것입니까?"

암마: "바사나 vasana (습기, 잠재 성향)로 인해서, 행위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행위에서 다시 바사나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첫번째 바사나는 신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이 바사나에서 수많은 행위들이 뒤를 따랐습니다. 행위를 따라, 선과 악이 따라 옵니다."

 

기도

진실하게 가슴에서 우러 나오는 기도를 하십시오:

하느님, 오늘도 끊임없이 당신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저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제가 당신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십시오.

제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언제나 제 곁에서 저를 지켜 주십시오.

 

겸손

인간들은 '우리가 세계를 정복했노라!'라고 큰소리 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발 밑에 있는 모래알의 수 조차도 세지를 못합니다.

그런 새끼 피라미들이 '우리가 세계를 정복했노라' 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에고(나라는 관념)에 빠진 인간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상이 재로 변할 수도 있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버튼을 누르려면 손이 움직여야 합니다.

인간은 손의 움직임 뒤에 존재하는 숨은 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용서

언제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우리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우리를 헐뜯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듣고 화를 냅니다. 그냥 그들을 용서하십시오.

하느님이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것은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시험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든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들을 향해 화를 내지 마십시오.

 

누워서 침 뱉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기적으로 이용하고 해치는 사람은

사실은 자신이 떨어질 파멸의 땅 구덩이를 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누워서 침을 뱉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하늘로 뱉은 침은 언젠가 다시 당신의 얼굴로 떨어지게 됩니다.

 

작은 사랑 & 큰 사랑

사랑에는 작은 사랑과 큰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은 사랑하지만,

우리의 이웃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는 사랑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를 우리의 부모를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종교는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종교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기까지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나라는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나라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영성의 목적은 작은 사랑을 큰 사랑(하느님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내부에 큰 사랑이 가득할 때, 향기롭고 아름다운 자비의 꽃이 피어 납니다.

 

작은사랑 & 큰사랑 2

질문: 암마, 작은 사랑과 큰 사랑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암마: 작은 사랑과 큰 사랑의 차이는 인간과 하느님의 차이와 같습니다.

       큰 사랑은 하느님의 본성이고, 작은 사랑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질문: 그러나 큰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암마: 네, 인간이 하느님을 깨달으면 그렇게 되지요.

행복의 순간

질문: 암마, 지금까지 살아 온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어느 때입니까?

암마: 암마에게는 매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질문: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암마: 암마는 언제나 행복합니다. 암마에게는 오직 순수한 사랑뿐입니다.  

타인의 고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받는 고통에 무관심합니다.

사람들의 태도는 이런 식입니다.

"남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나만 괜찮으면 돼."

이런 태도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게 해달라고 진실하게 기원합시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쩌지?

왜 우리는 이런 일로 고통 받아야만 하는 걸까?" 라고 생각하도록 합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배웁시다.

울음

신을 생각하며 5분 우는 것과 명상을 한 시간 하는 것은 같습니다.

우는 동안 마음은 쉽게 신에 대한 생각으로 빠져 듭니다.

울음이 나오지 않거든 이렇게 기도 하십시요:

'오, 하느님, 왜 저는 당신을 위해 울 수가 없는 것입니까?' 

신의 침묵

누군가 암마께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

왜 하느님은 침묵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을 위해서, 하느님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까?" 

암마: 하느님은 분명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고통 받는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살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를 창조했습니다.

우리는 고통 받는 이웃의 어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웃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자리에 우리를 놓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받는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어떤 연민의 감정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신의 뜻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면, 인간이 죄를 짓는 것도 하느님의 뜻입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고(나라는 관념)에 빠져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느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다' 라고 정말 믿는다면,

'인간이 벌을 받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다' 라고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출처 ; www.ammakorea.org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작품18번 2악장 아다지오"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No.2 in c minor Op.18 mov.2 Ada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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